비전화저널

[인터뷰] 비전화제작자 1기 민영

2018년 03월 27일

 

후지무라 센세의 제자인증과정을 마친 ‘비전화제작자 1기’가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3월 28일, 지난 1년간 ‘자급, 자족, 자립’을 화두로 수련한 내용을 전시하고, 졸업 후 움직임을 소개하는 졸업 의례가 열립니다. 졸업을 앞두고 민영(비전화제작자 1기)과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경험을 돌아보았습니다.


“아,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였구나.”

작년 봄, 민영은 하던 일을 멈췄다. 어느 날인가 마우스를 클릭하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쉬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졌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저는 비영리와 공공 영역에서 7년 동안 일했어요. 관계망 속에서 삶의 문제를 풀며 사는 게 제가 바라던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과중한 업무에 소진되는 이들이 눈에 들어 왔어요. 일은 그대로이거나 늘어나는데 동료가 떠나고 함께 일할 사람이 바뀌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적어도 1년은 충분히 쉴 생각이었다. 비전화제작자 모집 포스터를 보기 전까지는. “바라는 삶”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끌렸다. 서른셋, 새로운 시작이 두렵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무슨 배짱인가 싶어 한 번 더 물으니 “나에게 1년을 선물하는 게 전혀 과분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에게 시간 투자하는 걸 아까워하지 마라. 나중이 아닌 지금 해라”라며 더 단호하다.

“작년 일본 비전화공방 갔을 때 눈물 쏙 빼게 울면서 알았죠. ‘아,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였구나.’ 후지무라 센세랑 유리코 상이 동분서주하면서 우리를 손주처럼 돌봐주시고, 밤에는 친구들이랑 별 보면서 기타도 치고, 누가 아파 보이면 괜찮냐고 물어보고. 그런 시간이 저한테 없었던 거예요. 아, 누군가 나를 감싸주고 애정으로 보살펴주는 게 이런 거구나. 그걸 알게 된 게 일본에서 비전화기술을 배운 것만큼 저에겐 인상적이었어요. 그즈음이었어요. 내가 이미 이 삶을 시작해서 과거로는 못 돌아가겠구나 싶었던 게.”

 

“저는 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폐 끼칠 줄 몰랐던 사람이었어요.”

작년 7월, 연수차 갔던 일본에서의 생활은 미안한 일투성이였다. ‘내가 꾸물대면 센세가 못 쉴 텐데, 주방이 더러우면 불편하실 텐데’ 하며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한편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전전긍긍할까? 생각해보면 처음 와본 공간에서 알아서 생활하고, 열한 명의 동료와 조금의 부딪힘도 없이 생활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돌아보니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국 상대도 ‘나한테 기대지 말라’는 요구였다. 남에게 관여하지 않는 만큼, 나도 간섭받지 않으니까 그게 자유라고 믿었다. 버거워도 내 몫이니까, 다 해내야 어른이니까, 그렇게 자립해나간다고 믿으며 자신과 타인을 소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공방에서는 자꾸 폐 끼칠 것을 요구받았다.

“사실 일이라는 게 결과는 정해져 있고 역할만 나누는 식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같이 논의하고 다 같이 일해요. 그러다 보면 서로 폐 끼칠 수밖에 없고, 동료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생기는 거 같아요.”


(일본 비전화공방에서의 생활모습)

 

비전화공방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

공방 생활은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싶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서툰 목공 실력이지만 ‘조립식 상품진열대’를 개발, 제작하며 그녀는 깨달았다.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상상 이상의 묵직한 쾌감’을 가져다준다는 걸. 뿐만 아니라 삶에는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걸 엿보는 계기도 되었다.

“진열대 만들 때 전 ‘얼마나 실용적일까’에 주안점을 뒀다면 후지무라 센세는 ‘이것이 놓여 있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실용성을 높인 제품과 아름다움에 비중을 둔 제품 두 가지를 만들었어요. 여전히 제게 아름다움이 최우선은 아니지만, 충분히 시간 들일 가치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얼마 전에는 CD 케이스 장을 직접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했다. 치수만 적어 보내준 친구에게 “곡선이 있어야 아름답다”며 시안을 보냈더니 친구가 놀라며 말했다. “네가 아름다움에 시간 들이는 걸 처음 봤어!”

“전 비전화공방에서 어떤 특정한 기술을 배운다기보다는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맛볼 수 있길 기대했어요. 물건을 만드는 제작도 있지만, 삶의 방식을 만드는 제작도 있잖아요. 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제작자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민영이 제작하여 출품한 조립형 상품진열대)


졸업 후 그녀는 비전화 커뮤니티카페를 운영해볼 생각이다. 사람들이 모여 복작거리며 새로운 일들로 연결되는 공간을 꿈꾼다. 돌이켜보면 10년 전 꿈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저 잊고 살았을 뿐이었다. 그럼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살지 않고 다시 돌아온 걸까. 그녀는 되묻는다. 그리고 발견한다. 자신이 하나의 궤적을 따라 꾸준히 걸어왔음을.

“누가 볼 때는 시민교육에서 주민자치로, 다시 커뮤니티 카페로 다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이게 하나의 흐름이라는 걸 발견했어요. 아, 내가 관계망 안에서 삶의 문제들을 풀며 살고 싶어 하는구나. 그렇게 점점 ‘바라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 같아요. 전 ‘이게 좋아, 싫어’ 이런 표현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도 아무도 말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저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저도 모르게 스스로 차단했어요. 비전화공방에서 말하는 ‘자급, 자족, 자립’에는 다 스스로 ‘自’ 자가 들어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 욕구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게 바라는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비전화공방에서 전 그걸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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