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저널

[인터뷰] 버드나무 가게 “도시 틈새에 꾸리는 단순한 삶”

2017년 11월 10일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엔 청년이 모여 사는 집이 있다.
‘버드나무 가게’란 간판이 버젓이 남은 가게 자리, 그리고 그 가게에 딸린 ㄷ자 모양의 작은 집. 3년 전, ‘공공미술 삼거리’란 단체에서 공동 주거 겸 작업장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매년 사는 사람이 바뀌며 그간 열다섯 명이 짧게 혹은 길게 머물다 떠났다. 이 집에서는 밥을 하든, 난방하든 뭐든 몸을 직접 움직여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버튼 하나로 해결하는 일이 이곳에서는 간단하지가 않다. 동네 전체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난방도, 조리도 나무 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인왕산이 지척이니 땔감은 넉넉하다. 푸세식 화장실은 때맞춰 똥차를 불러줘야 공용화장실로 내달릴 일이 없다. 그 속에서 오히려 삶이 단순해진다고 말하는 그들. 버드나무 가게와 연을 맺고 사는 세 청년을 만났다.

 

(왼쪽부터) 자인, 보파, 중원

 

“서울 살면, 괜히 바빠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며 ‘보파’가 말했다. 시골 살 때는 기지개 한 번 쭉 펴면 아침이 갔다. 차 한 잔 넉넉히 마실 여유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한 시간이라도 그러면 늦장 부리는 느낌이다. 필요한 일만 해야 할 것 같고, ‘괜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자꾸 생략한다. 하지만 서울살이를 선택한 뒤에도 생략할 수 없었던 게 있다. 바로 불 피우기. 몸을 움직여 일상을 꾸리는 게 좋고, 무엇보다 난로에 불을 때면 사람이 모이는 게 좋다. 두 달 전 부엌에 화덕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라면 하나 끓일래두 맘 단디 먹어야” 하지만 그녀에겐 익숙한 생활 방식이다.

“나무하고, 요리하고, 춥게 자고 이런 거 익숙해요.” 보파는 금산의 폐교에서 오 년을 살았다. 처음엔 대안학교 교사를 하러 갔는데, ‘살아보지도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립이 뭔지, 생태가 뭔지 머리로만 아는 느낌이었다. 직접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에 ‘별에별꼴’이라는 청년자립공동체를 만들고, 오 년을 함께 ‘산다’.

“농사를 표방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텃밭은 언제나 숲을 이루었죠. (웃음) 시련을 맛보며 나한테 농사가 안 맞는구나 싶었어요. 농사보단 숲에서 채취해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늘려보자는 목표도 생겼고요.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 ‘잃어버린 야생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활력을 잃지 않는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놓고 싶지 않았어요. 버드나무 가게도 그런 맥락을 따라가다 보니 만난 거 같아요.”

 

전골을 만들기 위해 화덕에 불을 붙이는 보파.
각진 공간이 아니라 더 매력이다.
흔히 직사각형이 효율이라 생각하지만,
이 부엌의 효율은 자투리 공간까지 다 활용한 多각형이다.

 

중원은 도시가 좋다. 이십 대에 혼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다. 서울에 와서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공공미술 삼거리’를 일터로 삼았다. 처음 버드나무 가게 만났을 때, 그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전부터 도시의 틈새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틀에서 금이 가며 생겨난 공간, 그 틈새에서 살고 싶다고 그는 늘 생각했다. 버드나무 가게는 그에게 그런 공간이었다. 갖춰지지 않아 직접 다 만들고 돌봐야 하는 것도 그에겐 매력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보증금 없는 5만 원의 월세가 장점이었다.
삼년 차가 되던 올 2월, 그는 ‘리어카집’을 만들며, 삶터를 옮겼다. 버드나무 가게 바로 옆, 빈 공터에 자리잡은 그 집은 그가 나무로 리어카 위에 손수 지은 집이다. 이동이 가능하니 도시의 틈새 어디든 자리 잡을 수 있다. 개미마을부터 불광, 연남, 성수, 그리고 다시 개미마을까지 이동 거리가 60km는 거뜬히 넘는다. 바퀴 위에 집을 올린 건 “쫓겨는 나도, 철거는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전 도시가 좋아요. 사람 많은 것도, 화려한 것도 다 좋아요. 일도 많고요. 도시에서 기생하면서 살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땐 시골 가서 살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부모님을 비롯해 가까이에 귀농 귀촌한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더 쉬운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낙오하는 거란 느낌도 있었고요. 그래서 서울에서 잘 살고 싶었어요. 멋있게, 남 부럽게!”

자인은 버드나무 가게에 오면 “마치 다른 시간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처음엔 그림을 그릴 작업 공간이 필요해서 들어왔다가 눌러살게 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는 이곳에서의 생활 하나하나가 다 배움이다. 버튼 하나 누르면 되는 보일러가 아니라 따뜻함을 만들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곳에서 처음 경험하는 이 감각이, 그녀는 좋다.

“올해초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컴퓨터 앞에서 반복되는 일을 하는 일상의 연속이었어요. 그러다 숫자 하나 틀리면 나의 온 시간이 붕괴하죠. 실체 없는 그 숫자 하나에 말이에요. 여기서는 손에 잡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엄청 추운 날에도 저한텐 여기가 따뜻한 공간처럼 느껴져요. 그때마다 중원인 ‘추운 건 추운 거’라고 말해주죠. (웃음)”

자인은 버드나무 가게를 “돌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말한다. 돌봄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지 않는 이들이 이상하게 모여든다고.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살려면, 도시와는 조금 다른 속도가 필요하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면, 복잡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삶이 단순해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산에 가 나무를 줍고, 불을 피워 요리하기까지 전 과정을 내가 다 하면 피곤하기보단 활력이 돈다. 그 과정에서 깨어나는 다른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노는 것 같이 단순하고도 별거 아닌 일들이 일상에서 제 비중을 찾아간다. 단순한 삶을 위해 필요한 건, 물건을 버리거나 모던한 수납장을 사는 일이 아니라, 한 번쯤 더 주위를 둘러보며 사는 일이라는 거. 버드나무 가게 사람들이 일러준 단순한 삶의 이치였다.

‘비전화 저널’은 서울이란 도시에서 ‘비전화’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전기나 화학물질이 주는 ‘간편’보다는, 직접 몸을 움직이며 ‘단순’해지는 삶의 면면을 탐구합니다. 비전화공방서울은 삶에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쌓는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비전화+>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버드나무 가게는 <비전화+>를 마중물로 화덕을 만들고 부엌을 단장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보파, 중원, 자인에게 감사합니다.

 

보파가 끓인 전골과 중원의 어머니가 해주신 생강차를 먹던 저녁
돌아와서 선물받은 자인의 그림책을 몇 번이나 펼쳐봤다.
[버드나무 가게의 커뮤니티 공간]

 

 

글 _ 우민정
그림_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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