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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예숢모험선 뽈레뽈레

2017년 12월 03일

 

 

매년 겨울, 뽈레뽈레는 지구 반대편을 향해 40시간을 날아간다. 말 그대로 “무작정 떠나는 브라질 음악 연수”다. 어떤 기약도 없이 브라질 음악을 배우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떠난 여행에서 이들은 무수한 스승을 만났다. 이들이 찾아갔던 2월, 브라질은 일상의 질서가 전복되는 ‘카니발’이 한창이었고 사람들은 낯선 이들에게 열려있었다. 덕분에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브라질만의 구전 리듬을 배웠다. 꿈에서도 음표가 기어 다닐 정도로 배운 리듬을 악보에 적고 또 적었다. 그러나 정작 가슴에 남은 배움은 악보가 아니었다.

“선생님, 악기 튜닝은 어떻게 해요? 악기마다 어떤 음을 내야 좋은 튜닝이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원하는 그 소리가 가장 좋은 소리지.”
– 뽈레뽈레 블로그 中

브라질에서의 배움은 이들이 뽈레뽈레를 시작하며 찾고자 했던 삶의 방향과도 일치했다. 창립멤버인 디오는 바투카다(브라질의 사물놀이)와 만남을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 첫 번째 사건”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에서 우연히 바투카다 공연을 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의 삶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단순히 ‘음악 하는 삶’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주변의 기대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려가겠다는 선언이자, 사건이었다.

“부모님하고 같이 살 때는 전 제가 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독립하고 보니까 해산물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나도 몰랐던 내가 보이는 거죠. 요즘은 돈 쓸 일이 없어요. 참는 게 아니에요. 그냥 사람들하고 악기를 두드리거나 만드는 일이 더 즐거워요. 생각해보면 예전에 하던 소비가 나를 위한 거였나 싶어요. 화장품이나 옷 같은 거는 다 남들한테 보이기 위한 거잖아요. 삶에서 그런 걸 걷어내니까 진짜 내가 필요한 게 뭔지 알게 되는 거 같아요.”

3년 전, 뽈레뽈레는 ‘북쳐핸섭’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시작은 6명이지만, 몇 개월 만에 로또와 디오 두 명이 남았다.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둘은 본격적으로 ‘뽈레뽈레’의 슬로건과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초 “들어오기 어렵다고 소문난” 뽈레뽈레에 잉앵이 합류하며 세 명이 됐다. 월급이 약속된 것도 아니고, 되려 출자금 오십 만원을 내야 하는데도 그는 흔쾌히 멤버가 되었다. 디오는 농담처럼 “다 버려야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입단이 어렵다.(웃음)”면서 “아무런 약속도 해줄 수 없는데 함께 해보겠다는 잉앵이 고마웠다”고 말한다. 그즈음 연습실도 생겼다. 맨손으로 시작한 일이라 작년까지 연습실도 없이 떠돌았다. 그러다 지난해 독천동에 딱 알맞고 저렴한 공간을 만났다. 작은 개척교회가 사용하는 지하 공간이었다. 그곳을 교회와 반반씩 나눠 썼다.


한쪽에서는 목사님이 설교 준비를 하고, 한쪽에서는 북을 두드리는 진풍경이 석 달 간 이어졌다. 교회가 이사를 간 뒤에는 온전히 공간을 쓸 수 있었지만 다른 문제가 반복됐다. 여러 명이 북을 두드리며 연습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경찰을 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멤버들이 위축됐다. 이사를 가든, 4천만 원을 들여 방음공사를 하든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자본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자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뽈레뽈레만의 방식은 뭘까?”

“질문을 바꾸니 이 공간이 우리한테 재밌어지더라고요. 다 실험 거리니까. 물론 실험할 게 너무 많았죠. (웃음) 결국 방음공사를 직접 다했어요. 4천만 원 공사를 4만 원에! 방음은 꽉 채우는 게 아니라 벽 사이에 공간을 둬야 해서 저기 보이듯이 장롱을 주워 문에 붙였어요. 버려진 가구를 작은 수레로 달달달 끌고 왔어요. 아마 동네 사람들이 우리 다 알 거예요.

공사는 정말 힘들었어요. 이래서 사람들이 돈, 돈 하나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이 오랜만에 들었어요. (웃음) 그렇지만 못할 것 같았던 공사를 우리 손으로 하니까, 세상만사가 다 수월해지더라고요. 고난을 헤쳐 나가는 방식이 그 사람과 단체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뽈레뽈레는 이 방음공사를 이(자본) 없으면 잇몸(자립력)으로라도 살아갈 힘을 기르는 ‘잇몸 강화 프로젝트’라 부른다. 악기를 직접 만드는 일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사람들과 바투카다를 함께 하려고 할 때마다 비싼 악기 가격이 늘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직접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제작을 주로 담당하는 로또는 “악기 만들 기술을 키워오지 않았다면, 나도 악기는 당연히 오십 만 원쯤 주고 사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말한다. 이제는 직접 악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소재와 제작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로또는 “실체를 바꾸는 작업이 삶을 바꾼다”고 말한다. 정신,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연습실을 넘어 광장에서도 이어진다. 탄핵부터 탈핵 집회까지,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북을 매고 광장에 나간다. “정치적인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광장에서 음악으로 표현하는 건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예술인으로서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하다 보니 해왔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작정하고 사랑하겠다 덤벼드는 일은 “무겁고,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우주 행복에 기여하는 예술 단체’가 슬로건이었어요. 그때는 우리가 하는 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렇게 미리 결론을 내리는 건 재미가 없더라고요. 완성된 무엇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뽈레뽈레’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슬로건도 바꿨어요. “당신과 우주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로요.”

뽈레뽈레는 올 겨울에도 브라질로 음악 연수를 떠난다. 이제 그곳도 반겨주는 이들이 있는 하나의 삶터이다. 스스로 지은 별칭 ‘예숢모험선’에 걸맞게 이들의 모험에는 ‘예술’과 ‘삶’이 한 단어에 녹아있다.

 

‘비전화 저널’은 ‘비전화(非電化)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전기나 화학물질이 주는 ‘간편’보다는, 직접 몸을 움직이며 ‘단순’해지는 삶의 면면을 탐구합니다. 비전화공방서울은 삶에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쌓는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비전화+>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뽈레뽈레는 <비전화+>를 마중물로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적인 악기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디오, 로또, 잉앵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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