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저널

[인터뷰] 1기 비전화제작자 수정

2019년 04월 04일

 

비전화공방 졸업 후 수정은 강화도 볼음도를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만 평의 논과 천 평의 고구마밭을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일군다. 강화의 낯선 섬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비전화공방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최근에는 볼음도에 나뭇집을 지을 계획도 세웠다.

“겁이 없어졌어요. 비전화공방에 와서 가장 달라진 점이에요. 비전화카페를 지어보기 전까지는 건축은 내가 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직접 집을 지으려고 하잖아요.”

 

인생의 샛길에서 만난 비전화공방

공방에 들어오기 전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전공은 자원환경공학. 순전히 ‘환경’이라는 단어 때문에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 <아프리카의 눈물>이란 다큐멘터리를 보고 환경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반전이 기다렸다. 그녀가 선택한 학과는 친환경적인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을 어떻게 자원화할 것인가를 공부하는 곳이었다.

“환경공학과로 전과라도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거기 다니는 친구 이야기 들어 봐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 환경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방황이 시작됐다. 우연히 ‘적정기술(규모가 작고 단순하며 적은 자원을 활용해 환경에 적은 영향을 끼치는 기술)’을 알게 됐는데 보자마자 ‘내가 하고 싶은 게 딱 이거였구나’ 싶었다.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캠프도 다녔다. 그러다 다시 새로운 질문을 막닥뜨렸다.

“적정기술 캠프에서 한 강사가 ‘나는 빈민 구제를 목표로 적정기술을 한다. 여러분에게 적정기술은 어떤 목표를 위한 도구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도무지 답을 모르겠는 거예요. 내가 이걸로 뭘 하려는 거지? 그때부터 더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고민했어요.”

풀리지 않는 질문을 안은 채 ‘비전화공방’을 만났다. 처음에는 적정기술을 더 심도 있게 배우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전화공방에서는 장르를 정해 하나만 배우는 게 아니라 농사도 짓고, 밥도 하고, 집도 짓고, 태양광 에너지도 배우고 골고루 하잖아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실제 생활과 비슷하니까요.”

비전화공방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기존 생각을 깨뜨렸다. 이전에는 적정기술 역시 하나의 직업이나 전문기술로 바라보고 접근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이젠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 전문기술이 있든 없든 ‘내가 바라는 삶’만 담기면 괜찮다는 확신이 생겼다.

비전화공방에서 밭을 가는 수정.
공방에서는 하나의 장르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농사와 요리, 건축, 에너지 등을 골고루 배울 수 있었다

 

돈이 없어지는 일상을 만들자

비전화공방 졸업 후에도 전문 분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의 기반을 만드는 방향으로 몸과 마음이 쏠렸다. 농사 지을 용기를 낸 것도 그 덕분이었다.

“같이 농사짓자는 정훈(우리동네사람들 대표)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돈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환경을 같이 만들자’라는 말이 가장 와닿았어요. 그런 흐름으로 살고자 할 때 농사는 기본이라고 저도 생각했어요.”

요즘 그녀는 먹거리 자급을 기본으로 돈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을 꾸리기 위한 상상을 자주 한다. 가능하다면 교환수단인 돈의 사용을 줄이고, 얼굴 아는 사람들과 물물교환으로 삶을 꾸려보고 싶다. 돈을 주고받더라도 아는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고 싶다. 그런 식으로 관계망을 바탕으로 한 경제 구조에서 사는 게 그녀의 바람이다. 
하지만 가끔 곁눈질도 한다. 졸업 후 바로 비전화제작자, 그리고 농부로 살아온 그녀는 동년배인 이십 대의 회사 생활도 궁금하다.

“어디서 생긴 로망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원이 돼서 정장 입고 백 메고 또각또각 구두 신고 다녀보고 싶기도 해요.(웃음) 근데 사실 생각하는 건 정말 그런 부분밖에 없어요.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이랑 사람들이랑 밥 먹으러 가는 거. 제 상상 속에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하나도 없는 거예요.”


볼음도에서 함께 농사짓는 수정(좌)과 정훈(우)

 

비전화공방, 바라는 삶을 질문하는 곳

그녀는 이 로망이 자신의 진짜 꿈이 아님을 잘 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주입된 생각이 내 마음이 아님을 알아차리며 ‘사회의 독을 빼고 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 제가 자라온 환경 때문에 자리 잡은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잖아요. 나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새에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라는 말들이 나를 괴롭히거든요. 이걸 알아간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독소를 빼는 거 같아요.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 수정은 자기 탐구가 인생의 유일한 목표이고 나머지는 그걸 통해서 발현되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아간다. 그전까지는 일에 매몰되는 삶을 살았다. 요즘은 일에 두었던 생활의 중심을 서서히 자기 자신에게로 옮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1기 이후의 비전화제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3만엔 비즈니스 망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저도 일이 늘 생활의 중심이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일에 따라 좌우되고 존재 이유까지 흔들리는 거예요. 요즘에서야 ‘아, 자리가 바뀌었구나’ 하면서 서서히 비중을 바꾸고 있어요. 저에게 비전화공방은 ‘어떤 삶을 바라는지’ 질문하는 곳이에요. 어떤 일을 맞이하든 그 질문을 놓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글 | 우민정
디자인 | 우영
사진 | 김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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