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저널

[워크숍] 정수기, 왜 어렵고 복잡해야 하죠?

2018년 05월 09일

 

“소유하는 것보다 만드는 일에 더 힘쓰면
물건은 기쁨과 만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 <핸드메이드 라이프>,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속 보이는 정수기!”

비전화 정수기를 소개해달라는 말에 홍, 모로, 로미(1기 비전화제작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정수기 속은 미지의 영역이다. 한국 사람 중 60%가 정수기를 사용하지만 원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을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고, 업체에서 관리하니 그럴 이유도 없다. 모르는 게 약이다 싶지만 매일 마시는 물이니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비전화정수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이유다.

“작년 워크숍 후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분이 많으셨어요. 생활에서 바로 사용할 물건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게 매력이죠. 특히 물은 늘 마시는 거니까 관심 갖는 사람이 많아요.”      – 로미 (1기 비전화제작자)


쉽고 단순할수록 좋다
비전화정수기의 투명함은 막연한 불안을 해결해준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직접 만들기 때문에 고쳐 쓰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시중의 정수기보다 정수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기 제작자들은 ‘비전화정수기’는 정수력이 ‘더 뛰어난 방식’이 아니라 ‘더 적절한 방식’ 중 하나라고 말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는 중금속 같은 물 속의 유해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해요. 그러다 보니 몸에 좋은 미네랄까지 제거하죠. 수돗물을 정수하기에는 너무 과한 방식이에요. ‘비전화정수기’는 수돗물을 정수하기에 딱 적절하게 만들어진 정수기에요.”      – 단디(비전화공방)


지난 3월에 열린 ‘비전화 정수기 워크숍’

비전화 제작자들이 기존 정수기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왜 어렵고 복잡해야 하죠?” 정수기뿐 아니라 전자제품 대부분이 사용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그 기능이 과연 다 필요할까? 오히려 사용자가 물건을 다루지 못하도록 소외시키는 건 아닌지 질문이 필요하다. 

비전화정수기는 누구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구조이다. 필요한 요구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부품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후지무라 센세의 비전화정수기를 한국에 가져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친절한 기술’이 비전화공방이 지향하는 기술이다. 문턱을 조금만 낮춰도 자립의 영역이 넓어진다.

“정수기를 만들어 집에 가져갔는데, 제가 뭘 어떻게 만들었는지 엄마는 전혀 감을 못 잡으시더라고요. 항상 완제품만 보니까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잖아요. 직접 만들어보기 시작하면서 전 시선이 달라져요. 이제 뭘 봐도 내가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 모로( 1기 비전화제작자)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일상

(사진) 비전화정수기. 모든 관이 투명해 오염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
7~8년 주기로 야자 활성탄만 교체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로는 앞으로 판매보다는 워크숍에 집중하고 싶다. 판매하더라도 사용자에게 정수기의 원리와 관리 방법을 꼼꼼히 알려주자는 게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그래야 사용자가 직접 물건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홍은 집에 비전화 정수기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샤워기에 설치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집에 이미 정수기가 있었지만, 비전화정수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워크숍 오셨던 분 중 페트병 물을 마시고 싶지 않다고 말한 분들이 많아요. 저희 집은 정수기를 썼는데 필터가 플라스틱이니까 교체할 때마다 쓰레기가 되잖아요. 비전화 정수기는 7~8년에 한 번 야자 활성탄만 갈아주면 되니까 그게 매력이죠. 제작하면서도 늘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식을 최대한 연구해요.”      – 홍 (1기 비전화제작자)

이들은 1차 워크숍 이후 피드백을 받아 활성탄 입자가 빠져나가는 문제, 뚜껑에 녹이 스는 문제를 개선했다. 이렇듯 비전화정수기는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휴대용이나 캠핑용을 만들 수는 없을까? 샤워실에 설치할 수는 없을까? 더 부품을 간소화할 수는 없을까? 다각도로 질문을 던지며 확장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이들이 연구를 거듭하는 이유는 나 혼자 특출난 기술을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을 시작했을 때 일상이 얼마나 즐거워지는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꿈꾼다. 누구나 ‘내 손으로 만든 정수기’ 하나쯤 있는 부엌을.

 

∴ 글         우민정
∴ 사진     박상준
∴ 디자인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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