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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잇는날] 손때 묻혀 만든 물건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2019년 10월 29일

손때 묻혀 만든 물건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 손 잇는 날 2019 축제 현장 스케치 –


  지난 10월 19일, 혁신파크 피아노숲에서 <손 잇는 날> 축제가 열렸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손수 광목천에 물감으로 써 내려간 “손 잇는 날 2019”라는 글씨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손때쟁이(셀러)들은 모두 각자 집에서 가져온 천과 소품으로 테이블을 꾸몄고, 가슴 한쪽에는 자투리 광목천으로 만든 이름표를 달았다. 

  참여자들은 종이컵이 아닌 텀블러에 든 음료를 마셨고, 빌린 식기에 음식을 담아 먹는 풍경도 흔했다. 한쪽에서는 설거지하는 모습도 보였다. 야외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VC 현수막과 일회용 컵, 비닐 포장 등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생태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축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회용품 없는 행사’는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이 축제가 특별한 건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손 잇는 날>만의 특별함은 찾아온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생태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는 데에 있다. 

  손때쟁이들은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자투리 나무의 쓰임을 제안하거나 플라스틱 포장지 없이 사는 법을 알려줬다. 또, 음식물쓰레기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퇴비함이나 전기 없이 청소하는 빗자루, 태풍으로 떨어진 복숭아를 되살려 먹는 잼 등 누구나 일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했다. 

  참여자들 역시 물건 구매보다는 손때쟁이들의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궁금해서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경상남도 밀양에서 온 한지현 씨(41)도 그 중 한 명이다. 5살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온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밀양에서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 모임을 하고 있어요.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마 끈을 엮어 만든 평상이 인상적이네요. 우리나라에서 나는 천연섬유로 평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새로운 발견이었어요.

  평상은 비전화제작자 싸리가 손수 제작한 작품이다. 천연소재인 나무와 마로 만들어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딱딱한 나무 평상에 비해 포근하고 편안하다. 이처럼 손때쟁이의 제품은 대부분 자연으로 돌아가는 천연 소재를 활용한 제품이 많다. 갈대 빗자루 역시 그중 하나다.  

   갈대 빗자루 워크숍에 참여한 김서진(38, 가명) 씨는 빗자루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냥 돈을 주고 사 갔다면 빗자루의 매력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을 거 같아요. 직접 만들며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물건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이날 축제의 또 다른 특색은 채식 음식의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서리태콩으로 만든 치즈와 수제 막걸리, 네팔식 채식 만두, 뜸팡이로 만든 야채 찐빵, 훈제 아몬드 등 채식 음식을 선보인 손때쟁이들이 많았다. 얼마 전 채식을 시작한 정현정(40, 가명) 씨는 다양한 비건 음식을 접할 기회를 만나 기뻤다고 말했다.

친구 영향으로 얼마 전 채식을 시작했어요.
맛이 없으면 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곳에서 가능성을 봤어요.

유기농 서리태로 만든 콩치(콩으로 만든 치즈)는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으로
비건 음식의 새로운 선택지를 제안했다. 비전화제작자 바라의 제품이다.

축제에서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인도식 찰포이 평상’.
제작자의 의도대로 이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기 없는 생활의 필수인 빗자루. 손으로 직접 만들어 정이 가고, 아름답다.
이날 축제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빗자루를 만드는 워크숍을 열었다.

 땅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버려지던 복숭아를 잼이나 청으로 만드는 ‘코스테스’ 팀.
실내 카페를 운영 중인 이들은 축제 참여는 처음이라며 ‘푸드 리퍼브(Food Refurb)’
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
다.


음악과 이야기가 흐르는 장터

  이번 축제에는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팀의 흥겨운 음악과 춤도 함께 했다. 초록색 중절모에 반짝이는 노란색 옷을 입은 악단이 숲을 돌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축제 기획자 양세은 씨는 “전기를 쓰지 않는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 축제의 흥겨움을 더해줄 거”라는 기대로 초대했다고 말했다. 기대처럼 이들은 장터의 흥을 한껏 북돋아 주었다. 기타와 북, 멜로디언, 우쿨렐레의 연주에 맞춰 다섯 살 아이부터 육십 대 여성까지 리듬을 타며 함께 춤을 췄다.

  손때쟁이(셀러)들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을 수 있는 장도 열렸다. 원하는 시간에 듣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면 누구나 몽골 텐트 안에서 <손때쟁이 토크>를 들을 수 있었다. 갈대 빗자루를 만든 비전화제작자 ‘봉’, 업사이클링 활동을 하는 ‘터치포굿’, 손으로 인쇄하는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캠프’, 비거니즘과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자야의 작업실’, 3만엔 비즈니스를 실천하는 ‘까르’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시민들을 기다렸다. 부스에서 미처 이야기를 다 나누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제작자의 깊이 있는 스토리와 철학을 만났다.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팀은 기타, 멜로디언, 우쿨렐레, 북을 연주하며 축제 분위기를 흥겹게 살려주었다.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팀의 리드에 따라 춤을 추는 시민들

‘손때쟁이 토크’에서는 부스에서 들을 수 없던 제작자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미래의 동료와 만나는 장 

이민영 단장(비전화공방서울)은 <손 잇는 날>은 앞으로 계속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사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급자족하며 살기 위해서는 많은 동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손 잇는 날>이 동료를 만나고, 삶이 전환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비전화공방에 오는 많은 분들이 ‘지금 나는 비전화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냐’라고 물으세요. 저는 <손 잇는 날>이 그런 삶의 매력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해요. 이 축제를 통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자급자족하는 삶에 몸을 담가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축제 전후로 손때쟁이들이 교류하는 장도 열렸다. 이민영 단장의 말대로 자급자족하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손 잇는 날>은 그런 의미에서 가벼운 만남을 계기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장이다.

비전화공방은 매년 <손 잇는 날>을 이어갈 생각이다. 이날 선보인 제품들과 기술도 워크숍을 통해 차례차례 시민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비전화적인 삶의 방식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비전화공방은 느리지만 담담하게 계속 걸어가고 있다.

<손 잇는 날>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면뿐만 아니라 오래 머물러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콩으로 만든 치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비전화제작자 바라.

평소에는 보기 힘든 제작자들의 작업하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띠 베틀로 작업을 하는 비전화제작자 크크.

축제가 끝난 후, 손때쟁이들의 애프터 파티가 열렸다. 이곳에서 셀러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했다.

손때쟁이들의 애프터 파티에서 셀러들은 손때 묻는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손의 감각, 우리를 잇는 움직임, 바라는 삶을 만드는 축제 <손 잇는 날>은 매년 시민들 곁을 찾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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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감각, 우리를 잇는 움직임,
바라는 삶을 만드는 축제’

손잇는날2019
때: 2019년 10월 19일(토)
곳: 서울혁신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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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우민정
∴ 사진     이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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