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저널

[비전화로 사는 날들] 내 삶으로 돌아오는 일-1/2

2019년 11월 21일

[비전화로 사는 날들]
내 삶으로 돌아오는 일-1

비전화제작자 2기 준기
비전화저널은 비전화공방서울이 발행하는 온라인 콘텐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자 수행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비전화제작자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비전화로 사는 날들’ 꼭지는,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을 마친 뒤에 제작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꼭지입니다.
비전화저널 기획꼭지 ‘비전화로 사는 날들’을 통해서 여러분은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의 입으로,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배움 뒤에 닥친 ‘살아가는 과정’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처음 글을 써줄 수 있냐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 내가 지금껏 쌓아올린 게 없는데 어떤 점을 보여줘야 하지? 역시는 역시나 보여줄게 없었으니 글감이 나오질 않았다. 자연스레 공방의 페이스북과 홈페이지로 향했고 잘 나온 사진과 글을 보며 살짝 기가 죽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번 비전화공방 홈페이지에는 그럴듯한 글이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 왠지 신이 났다. 나는 지금 제작자로써 그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제작자 과정을 1년 동안 수행했고, 후지무라 센세께서 알려주신 삶의 가치들을 실천하며 살고 싶은 제작자로써 나의 이야기를 적기로 했다!

대학 졸업을 일 년 앞두고 휴학 신청을 했다. 잘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대로 졸업을 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에 들어가 톱니바퀴처럼 일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될 것만 같았고,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내 삶이랑 관계없는 일을 오랜 시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명확한 목표도 없이 휴학을 결정했다. 외국에 나가서 혼자 살아보고, 돈이나 벌어보자는 생각에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중 뜻밖의 기회가 생겨 네팔에 다녀오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잠깐 쉬다 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네팔에서 머물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네팔의 한마을에서의 생활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리 크지 않은 집에 살았고, 집마다 작은 텃밭과 논이 있고, 물소를 기르고 있었다. 새벽이면 사람들이 소에게 여물을 주고 텃밭에 나가 일을 했다. 아침에는 물소의 젖을 짜서 뻐니르라는 치즈를 만들었고 마을로 찾아오는 중간 상인을 통해 치즈를 팔아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비적인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다. 소금, 건전지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을에서 나는 것들을 이용해 만들어 사용했다. 오후엔 집에서 쉬거나 주변 집에 찾아가 수다를 떨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그곳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두 그들의 삶으로 돌아왔다. 삶의 터전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이 괜히 부러워지는 순간이었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삶으로 돌아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네팔에서 지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 아닌,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고민은 자연스레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다. 귀국 후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무렵 지인을 통해 비전화 공방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 짤막하게 찾아본 비전화 공방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활동이 많아 보였고, 내가 살고 싶은 앞으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갈피를 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비전화 공방에 지원하게 되었다.

제작자 과정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작은 일 만들기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재밌을 것 같은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걸 발전시켜 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하게 내 마음에 들고 평생직장처럼 일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찾기 어렵지 않았나 싶다.

제작자 과정의 하나인 장터 출품을 위해 아이템을 정해야 할 시기가 되자 조급함은 점점 심해져 갔다. 쉽게 정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에 자책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후지무라 센세께서 추천해주신 몇 가지 아이템 리스트를 받게 되었다. 그중에는 일본의 발효식품인 미소가 있었다. 그나마 평소에 요리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미소라는 아이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소는 발효가 되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장터에서 완제품을 팔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어 다른 발효식품인 낫또를 선택했다. 당시 나는 낫또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었고 두세 번 먹어본 게 전부였지만, 뭔가 재미있을 것 같으니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테마였다.

낫또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기가 필요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지금까지 배운 기술을 활용해 만들기엔 충분했다. 발효기가 완성되자 본격적으로 낫또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세 번의 시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2주일 가까이 실패만 하다 보니, 흥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터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흥미는 없었지만 콩을 익히는 방법, 접균을 하는 방법, 발효와 숙성까지. 모든 과정에 집중하고 기록하면서 연구를 했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첫 낫또를 만들게 되었다. 콩에 물풀을 살짝 발라놓은 듯한 비주얼이었지만 분명 실이 있었고 낫또의 냄새가 났다.

첫 낫또를 본 후 신기하게도 사라져가던 흥미는 자신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낫또가 만들어지는 원리, 낫또의 비주얼, 만드는 기술, 그리고 맛있는 요리까지. 일련의 과정을 혼자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되었고. 손 있는 날에 출점할 때 하나하나 자부심을 담아 정성껏 만들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장터에 출품할 유리병 낫또를 하나하나 정성껏 만들다 보니 어느새 밤 12시가 되었다. 네 시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해서 정성껏 무언가를 만들었다. 내 삶에서 이런 몰입의 경험은 게임을 할 때 말고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가지런히 정돈된 병 낫또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어느 한병도 허투루 소독하지 않았고 대충 만들지도 않았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과정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쳤고 가슴이 벅차올랐던 순간이었다.

 

 

– 다음주 화요일 비전화로 사는 날들, ‘내 삶으로 돌아오는 일(준기)’ 2편이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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