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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로 사는 날들]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1/2

2019년 12월 04일

[비전화로 사는 날들]
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1

비전화제작자 2기 산고양이
비전화저널은 비전화공방서울이 발행하는 온라인 콘텐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자 수행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비전화제작자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비전화로 사는 날들’ 꼭지는,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을 마친 뒤에 제작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꼭지입니다.
비전화저널 기획꼭지 ‘비전화로 사는 날들’을 통해서 여러분은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의 입으로,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배움 뒤에 닥친 ‘살아가는 과정’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고 진정한 행복을 주는 삶일까?
세상에 나와 늘 내 안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습니다.

입시지옥에서 모범생의 탈을 쓰고 공부했지만, 저의 내면은 늘 자유를 꿈꾸고 있었고, 내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와 다니게 된 대학 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의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우울하게 지내다가, 이곳에서 ‘내가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자퇴를 했습니다. 내가 진짜 배워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일단 여기서 계속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없다는 생각으로 온 우주의 고아가 된 양 이리저리 세상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반항심에 가득 차 혼자서 홍대의 한 셰어하우스로 이사를 갔고,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이자 공연장인 곳에서 새벽 3시까지 일을 하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나는 나만의 예술을 할 거야.’라는 마음을 갖고 작은 방 한쪽 벽에는 늘 창작 계획을 거창하게 써 두었지만, 늦은 밤까지 알바를 하고 낮에는 지쳐 쓰러져 있는 생활의 반복뿐이었습니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은 멀리 밀어둔 채, 청소를 하고 치킨을 튀기며 공연장에 공연을 하러 오는 사람들, 카페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몸과 마음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몸과 마음의 케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집이 있는 작은 동네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했지만,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이 점점 저를 잠식해갔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도서관을 다니며 잡지나 책을 보면 다들 자기만의 분야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 얘기뿐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부모님은 원래 공부를 잘했으니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다시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라. 재입학해라.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으나 그 모든 것이 저의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때까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뛰쳐나갔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만 깊어졌고,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낄 자리가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가 반복되었고 생각이 깊어지니 병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갈 방법은 없어. 내가 낄 자리는 없어. 나는 필요 없는 존재야.’라는 생각은 죽음을 떠올리게 했고 그 때부터는 죽을 방법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길고 긴 어둠이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어둠.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지만 병원이 나를 고칠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병원에서 타온 약도 먹지 않았고,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며 상담을 청하거나 종교단체나 치유센터 같은 곳을 찾아 다녔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나를 도울 수 없기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죽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이불 속에서 누워있던 나날을 보내다 ‘죽지 못하니, 살아야겠다.’라는 가느다란 실 같은 빛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을 잡고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살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108배를 100일 동안 하며 운동을 하는 것부터였습니다. 아무것도 못 해도 108배라도 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100일을 보내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존경했던 교수님이 권해주셨던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이 떠올라 그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내 안의 명제가 ‘내가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하면 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때까지는 내가 세상이 정해진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는 것. 주변 친구들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 예술은 취미로나 하고 다른 전문직을 가지라는 것. 그런 다른 사람들의 스토리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 숨을 쉴 수 없었고, 그것을 할 자신이 없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던 것이었습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세상이 만들어준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훈련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새롭게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태어난 내가 선택한 꿈은 놀랍게도 춤을 추고 연기를 하고 무대에 서는 퍼포머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피나 바우쉬의 영화를 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 누구에게 설명해도 이해시키지 못할 내 영혼의 감옥. 내가 겪었던 어둠을 풀어낼 수는 방법은 저렇게 춤을 추는 것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은 뒤, 오랜 우울 속에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동네 현대무용학원에 가서 입시 반 학생들의 뒤에 서서 뒹굴었습니다. 퉁퉁한 몸 위에 타이즈와 레오타드를 입은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든 말든 ‘몸’ ‘몸’ ‘몸’ 몸만 생각하자, 생각이 나를 죽였으니 몸만 생각하자는 생각으로 온몸에 땀을 흘리며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 땀이 점점 저를 치유해갔습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표현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 그것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풀어내고,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쓰고, 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를 몸짓을 하며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시간이 남긴 흔적들을 지워나갔습니다.  그런 작은 창조적인 행위들이 점점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냈고, 다시 세상에 나갈 힘이 생긴 저는 또다시 세상을 탐험하러 나갔습니다. 새로 태어난 나는 그 누구보다 즉흥적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대화하다 즉흥적으로 제주도에 여행을 가서 즉흥적으로 제주도에서 살게 된 적도 있고, 인도에 혼자 가서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긴 채 겁도 없이 흐르는 대로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영혼은 자신이 원하는 경험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달려갔고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분명 저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지만, 어딘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나를 일으키고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외롭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나눌 사람을 내려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를 했고 지금의 영혼의 동료를 만났습니다.

‘오늘 **에서 예술가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는 잼이 열리니 가 봐.’라는 아는 카페 사장님의 문자를 보고 찾아갔던 곳. 그곳에서 처음으로 ‘컨택즉흥’이라는 장르의 춤을 접했고, 그곳에서 어떻게 추는지도 모르는 춤에 몸을 맡긴 채 움직이다 영혼의 동료 위에 넘어진 것을 계기로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저의 영혼은 겁도 없었고 오로지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기에, 처음 만난 그에게 바로 고백을 했고 엄청나게 구애를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도 제가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살던 시절, 명상 춤을 접했고 그 뒤로 춤을 추면서 에너지를 느끼고 회전이 일어나는 등의 현상을 경험했지만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는데, 그 또한 그런 경험을 했고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수년간 춤을 추며 겪었던 현상들, 수행의 과정을 제게 알려주었고 그 후엔 반드시 저 또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를 온전히 신뢰하고 그 경험을 허용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이비종교에 빠진 것 아니냐 그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 아니냐 하는 불쾌할 정도의 진심 어린 걱정들을 들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것들을 느꼈고, 그 느낌들은 나를 현존하게 하고 더 나은 나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경험에 의지한다. 누가 좋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고 누가 나쁘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다.’ 최근에 읽은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다져본 저의 가치관입니다. 그렇게 함께 춤을 추고 명상을 하면서 쌓아나간 우리들의 느낌과 경험을 축적한 것이 바로 저희가 추고 있는 ‘명상느낌춤’이라는 춤입니다. 명상 춤을 춘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디에서 배웠어요?”, “선생님이 누구예요?”라는 질문입니다. 모두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해 있던 것. 과거의 춤 명상가들이 해왔던 것을 스스로 기억해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명상느낌춤’ 뿐만 아니라 ‘컨택즉흥’이라는 춤 또한 배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춤이 점점 제 삶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공원에 나가 춤을 추고, 저녁에 돌아오는 길 가로등 아래에서 춤을 추면서 언젠가는 무대에 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고, 연애를 하면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9시간이 지나버리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생활의 문제는 남아있었습니다. 명상느낌춤을 연구하고 알리는 ‘명상느낌춤 연구소’, 컨택즉흥의 퍼포먼스 적인 요소와 명상춤의 명상적인 요소를 결합한 콘텐츠를 만드는 ‘컨택고양이’ 두 개의 그룹을 만들어 운영하며 춤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잼을 열기도 했지만, 수입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웠고, 알바를 해도 서울의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버거웠습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금 나의 스펙에서 할 수 있는 서비스직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느꼈지만 달리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고민의 시간 속에서 우연히 비전화공방서울을 알게 되었고, ‘자립’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비전화제작자 과정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기대와 환상 속에서 다니게 된 수행과정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10시에서 5시라는 시간표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그 외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든 생활이 공방으로 가득 차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루 종일 여러 명의 사람과 부대끼는 공동생활도, 육체적인 노동력이 필수적인 건축이나 제작 같은 수행과정도 힘들기만 했습니다. 저의 꿈 중 하나가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짓고 집 짓고 내 물건은 내가 만들면서 자급자족하며 살겠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본 자급자족하는 삶은 끊임없는 노동이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체력적으로 심하게 부침을 겪으며 일을 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져 건축, 제작 시간만 오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꾸 빠지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럴 거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자립’ 에 관한 센세의 철학, 내가 좋아하는 일과 삶과 여가가 통합되는 3만엔 비즈니스에 대한 철학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나는 반드시 그 철학을 내가 경험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비즈’ 시간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고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꿈꾸고 그 꿈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것을 현실에서 아름답고 세련되게 구현하는 것. 문제가 있으면 포기하는 게 아니라 문제에 대한 답을 발명해내는 것. 언제나 창조하기 위해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를 만드는 것. 센세가 말씀해 주신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저를 환기시켜주고 다시 일으켜주곤 합니다.  스스로를 최고라 생각하는 센세 그 자체가 가진 에너지도 지금의 저에게 엄청난 영감이 되어줍니다.  일년동안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을 겪어내는 일이 힘들었지만, 사람들과 ‘함께’가 되어본 경험도 저의 인생에서 아주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다시 태어난 삶에서 처음 만나게 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따뜻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많은 용기와 힘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도 떠올리면 좋은 사람들을 마음에 둘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한 일입니다.

 

– 다음주 화요일 비전화로 사는 날들, ‘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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