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저널

[비전화로 사는 날들]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2/2

2019년 12월 10일

[비전화로 사는 날들]
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2

비전화제작자 2기 산고양이
비전화저널은 비전화공방서울이 발행하는 온라인 콘텐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라는 삶을 살고자 수행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비전화제작자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비전화로 사는 날들’ 꼭지는,
비전화제작자 수행과정을 마친 뒤에 제작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꼭지입니다.
비전화저널 기획꼭지 ‘비전화로 사는 날들’을 통해서 여러분은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의 입으로,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배움 뒤에 닥친 ‘살아가는 과정’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고 진정한 행복을 주는 삶일까?
세상에 나와 늘 내 안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습니다.

비전화공방서울 제자양성과정을 졸업한 지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작년과는 사뭇 다른 색채와 감각들을 느끼며 올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와 경험들 속에서 좀 더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오래도록 꿈꿔왔던 새로운 세계 속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느낌입니다. 올해 졸업 의례에서 이번해 9월까지 고향 마산에 치유와 예술, 건강한 먹거리가 함께하는 문화살롱을 열겠다는 약속을 비장하게 외쳤는데요. 하지만 카페를 열기 위해 일본에 답사도 다녀오고 몇 일 내내 부동산을 헤매기도 하며 공간의 가계약까지 마쳤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발생하여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떤 공간을 봐도 마음이 가지 않고 에너지가 솟지 않아서 며칠 동안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하드웨어를 지금 갖출 수 없다면 소프트웨어 먼저 제대로 갖추면 되잖아! 어쩌면 순서가 틀렸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는 요가 수련과 올해 하기로 한 춤 작업들(워크숍과 공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직후 직장을 갖거나 알바를 하는 것에 스스로를 종속시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해결하며 졸업 직전에 구상한 ‘Exciting Business 익사이팅 비즈니스(자신의 비전을 비즈니스화)’를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스스로에게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 고향인 마산이었기에 저는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산에 내려가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내가 좋아하고 업으로 삼고 싶은 요가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두 친구의 대화에서 좋은 요가원이 있다는 얘기를 엿듣고 물어본 끝에 지금의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고, 단순히 육체적 수련을 넘어서 에너지를 깨우고 깊은 내면에 이르는 수련을 할 수 있게 되는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때 카페에서 만난 친구는 현재 요가원에서 자격증 과정을 함께 듣는 도반이 되었네요.

나의 몸과 숨, 그리고 그 너머로 흐르는 에너지를 지켜봐 주는 과정에서 나의 감정이나 과거의 상처가 얽힌 실타래가 하나하나 풀리고 눈물로 씻겨나가는 경험. 그때 흘리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한동안은 그렇게 요가 수련마다 울면서 오랜 타향살이(물리적으로 고향을 떠나 있으며 겪었던 것과 내가 내 영혼을 떠나 있어서 겪었던 것)에서 쌓였던 묵은 때를 많이 벗겨냈습니다.

그렇게 고향에서 몸과 마음을 다지며, 외부적으로는 작년까지 공방 생활을 하며 집중하지 못했던 춤을 통한 활동으로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4월 말에 있었던 국제 즉흥 춤 축제에 공연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영혼의 동료는 올해 함께 꼭 공연을 올리자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는데, 작년 겨울 문화비축기지 크리스마스 마켓에 셀러로 참여했을 때 손님으로 와주었던 비전화제작자 1기 노엘라에게 음악을 부탁하게 되면서 함께 공연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노엘라가 함께 해줌으로써 저희의 몸짓에 독특한 소리가 입혀지며 춤, 음악 모두가 리얼 즉흥인 새로운 공연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비전화제작자 생활을 하며 체력의 부침이 심했고, 밥 이외의 물질적인 것을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이라는 공방의 슬로건을 제대로 실현해내고 있지 않다는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공연을 함께 완성해 보는 경험을 해 봄으로써, 물건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경험을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땀 흘린 동료에 대한 고마움과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공연을 끝내고 인연이 닿고 닿아 9월 초에 또 하나의 공연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영혼의 동료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예술 감독님의 제안으로 신동엽 시인 50주기를 맞아 제작하게 된 ‘석가탑’이라는 입체낭독극에 안무 감독이자 무용수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신동엽 시인이 명성여고에 재직하던 시절에 학생들과 함께 올렸던 오페레타를 명성여고 후속인 동대부여고 학생들과 함께 음악과 춤이 함께 하는 입체낭독극으로 바꾸어 무대에 올리는 작업으로, 저와 영혼의 동료는 학생들의 안무를 만들고 무대에서는 즉흥 춤을 통해 학생들의 낭독극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처음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연료를 지불받는 공연….. 드디어 ‘예술로 밥벌이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요! 흠모하던 가야금 연주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이신 정민아 님과 함께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설렘과 기쁨은 잠시. 사람들은 기회를 몰라서 안 잡는 게 아니라 막상 그 기회가 오면 두려워서 잡지 못한다고 하던가요? 저에게도 엄청난 두려움과 중압감이 몰려왔습니다. 스스로의 에너지를 느끼며 추는 춤은 저를 치유하고 지혜의 말로 이끌어주는 일종의 수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춤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면?

갑자기 나는 내 영혼의 눈이 아닌 내 멋대로 상상해 낸 세상의 시선으로 나의 춤을 판단하며 막연한 불안함에 시달렸습니다. 아카데믹한 코스를 밟지 않은 네가 감히 무용 감독이라고? 무용수라고? 내면에서는 자신을 깎아내리는 수없는 말들이 오갔고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을 만나서 공연 연습을 진행하며 진지한 눈빛으로 우리들을 따라주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매일 춤을 추고 촬영해 보면서 ‘우리만이 출 수 있는 춤’ 이 있고 그것을 출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누군가의 가면을 쓰려고 할 때의 나는 불편하고 어색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 내 안에 흐르는 순간의 에너지의 통로가 될 때, 그 순간의 몸에서는 빛이 납니다. 그것을 스스로 보고 느낀 뒤부터 타인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고, 소중한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연습을 하니 이전에는 들어도 알 수 없었던 감각을 알게 되었고 내가 갖고 있던 한계가 한꺼풀 벗겨지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춤 안에서 더 자유로워졌고 스스로 춤추는 것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고 이끌어주는 영혼의 동료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얼마 전 멀리 제주에서 사는 아는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하는 멀고도 가까운 사이입니다. ” 박나은-금반하(제주도에 살던 시절에 쓰던 이름), 신나게 살고 있는 것 같군요. 참 좋은 시간이네요.” 저에게 보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며 보내온 메시지에 적힌 말이었습니다. 참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들 속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이 모든 순간이 참으로 신나고 좋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지 스스로 선택하며, 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아가는 삶. 지금, 이 순간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낳아야 할 것을 낳으며 사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정성 들여 밥을 해 먹이는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삶.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오늘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에너지를 저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충분합니다.

매일 아침 눈 뜨면 하는 기도입니다. 어둠이 있었기에 빛이 빛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어둠을 아는 빛이 되어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처럼 신나게 춤추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더 밝게 빛나려 합니다. 모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편) 먹지 않음을 통해 발견한 먹고 살기

일주일간 단식을 해보았습니다. 요가원에서 장 청소를 할 기회가 있어서 장 청소를 한 김에 단식을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위가 자주 더부룩해지고 역류성 식도염 같은 증상들이 있었던지라 단식하면 좋아질 거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예 생수만 먹는 단식이 아니라 세끼마다 된장차 반 잔과 물에 탄 조청을 먹으며 굶어서인지 생각보다 배고픔은 많지 않았고 뭔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도 강하지 않았습니다. 저혈당으로 인한 어지러움과 위가 치유되면서 나타나는 명현현상으로 힘들긴 했지만 7일은 생각보다 쉽게 지나갔습니다.

저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굶는 그 자체보다 굶고 나서 먹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었습니다. 굶었던 몸은 쌀을 한 시간 동안 끓여 위에 뜬 물로만 된 미음 한 숟갈에도 엄청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쌀은 오묘하게 달큰하고 이때껏 먹었던 밥은 뭐지? 할 정도로 맛이 있었고 한 숟갈의 미음도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감을 하지 않고 삶은 야채를 먹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더 컸습니다. 오잉?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콩나물이 이렇게 맛있는 야채였단 말인가? 버섯은 또 왜 이리 향긋한 고기 같지? 가지는 생각보다 더 푸릇하구나! 비빔밥에 넣어 먹던 나물, 제사상에 오르는 나물 등등 나물은 다 비슷비슷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양념이 그들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맛을 감싸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실험 삼아 양념을 한 잡채 속에 들어있던 콩나물 한 가닥을 먹어보았는데, 간을 하지 않은 콩나물이 2배 이상 맛이 좋아서 정말로 놀랐습니다. 단식을 하고 아기 상태로 돌아가 미음부터 시작해 한 가지 한 가지 늘려가며 맛을 보는 일은 서울 곳곳을 다니며 맛집 투어를 하는 것과 버금가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먹어야 하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단식을 하기 전에는 음식은 무조건 조리를 하고 간을 해야만 맛있다고 여겼었는데 그것이 아니었고, 내가 일 인분이라고 생각했던 양이 사실은 내가 원래 먹어야 할 양보다 훨씬 많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몸이 소금 한 방울, 미음 한 숟갈에도 반응하는 섬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의 몸에 어떤 것을 넣는 것이 왜 중요한지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얼마 전에 보았는데, 자신이 농사지은 것들로 아주 정성 들여 매끼를 해 먹는 여인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 그런 모습일 것 같습니다. 스스로 기른 자연 그대로의 재료로 사랑을 듬뿍 담아 만든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이 만들어 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앞으로 그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 비전화로 사는 날들, ‘다시 태어난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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