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화저널

[인터뷰] 비전화제작자 2기 “래도, 요루, 이르”

2018년 07월 06일

 

2기 비전화제작자를 만났다. 순천에서 온 이르, 부산에서 온 요루, 광주에서 온 래도. 셋 다 제작자가 되기 위해 삶터도 함께 옮긴 이들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이들은 비전화공방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을까? 세 명과 인터뷰를 통해 2기 제작자의 생활을 엿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먼 곳에서 오셨다고 들었어요. 비전화제작자로서 길을 선택하는 데 또다른 무게가 있었을 거 같아요. 각자 비전화공방을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는지 궁금해요.

이르 : 군대 다녀와서 대학 복학 후에 방황을 많이 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전공도 바꿨는데 삶이 바뀌진 않더라고요. 비전화공방 팜플렛을 보고 ‘아, 여기 가면 살만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올 4월에 순천에서 서울로 왔어요.

요루 : 전 태어나서 계속 부산에 살았어요. 늘 삶터를 제가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부산이라는 도시에 계속 갇힌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 비전화제작자 모집 공고를 봤어요. ‘아, 이거다!’ 했죠.

래도 : 저도 페이스북에서 공고를 보자마자 ‘이거다!’ 했어요. 전 대안학교 교사였는데, 삼 년 전부터 적정기술 모임도 함께 했었어요. 근데 진도가 잘 안 나가더라고요. 누군가 한 명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에 권했는데, 결국은 제가 가고 싶은 거더라고요. 다행히 짝꿍도, 일터도 지지해줘서 올 수 있었어요.

 

집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래도 : 처음에는 지인을 통해 집을 구했어요. 그런데 지하철 타는 동안의 뭐랄까… 개인적인 정서가 촌놈인 저한테는 이질적이었어요. 편한데 불편한 느낌? 적응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우보 선생님께서 농장에서 살아도 된다 하셔서 거기서 살고 있어요.

우보농장에서 모내기 하는 ‘래도’

 

지하철 이야기가 인상 깊어요.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낯선 풍경도 많아졌겠어요.

래도 : 버스 서면 뒷문으로 사람들이 막 올라 타잖아요. 아, 서울 사람들 참 바쁘고 치열하게 산다 싶죠.

요루 : 서울은 ‘할 거리’가 많아요. 혁신파크만 봐도 재밌고 쉽게 할 수 있는 거리가 정말 많잖아요. 저는 14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쭉 제도권 밖에서 생활하면서 강의나 모임을 굉장히 많이 찾아 다녔어요. 십 년쯤 되니까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때 비전화공방을 만났죠. 사실 살 곳이 없다는 게 처음엔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첫 일주일은 삼촌집에서 머무르다 지금은 제작자 동료의 집에서 공동주거하고 있어요.

이르 : 저도 친구네서 지내요. 서울은 아무래도 빽빽한 느낌이 들죠. 순천에는 스타벅스가 하나였는데 여기는 두 블럭마다 나오고, 비슷한 가게들이 많아요. 핫하다는 데 가면 인테리어도 다 똑같고요.

 

다들 관계망을 통해 집을 구했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사는 곳도 그렇지만, 공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니까 일상도 많이 바뀌었을 거 같아요. 수행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루 : 비전화공방은 저한테 어떻게 보면 ‘끝까지 가보는 선택’이었어요. 늘 어중간하게 ‘내가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만 했어요. 이번에 끝까지 가보자 싶었죠. 그런 다음에 나한테 맞는 균형점을 찾아가자고.
사실 건축은 정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밌더라고요. 미지의 영역을 공부해 나가는 재미랄까요? 리더인 재윤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늘 ‘의견을 주세요’하니까, 저도 더 잘해보고 싶어요. 열심히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고요. 센세가 늘 “미래에서 좋아할 일을 찾아라”라고 말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어요. 앞으로는 해보지 않았던 일에도 설렘을 느낀다면 기꺼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르 : 대학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한 방에 살아도 대화를 거의 안 하거든요. 한다 해도 취업 걱정 정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어요. 공방에서 처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저한테는 꿈꾸고 있다 싶을 정도로 다른 세상이에요.

래도 : 늘 숙제를 내주다 숙제를 받는 기분이에요. 대안에 대한 경험 없이 대안학교 선생님으로 사는 데에 늘 한계를 느꼈어요. 저한테는 이곳이 대안학교에요.

 

비전화까페에 흙미장 중인 ‘이르’

 

지금까지의 배움 중에 일 년동안 품고 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루 : “하드(hard)하지만 즐겁게!”라는 후지무라 센세의 말이요. 일이 점점 많아지니까 다들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센세가 “일을 줄이는 것만이 해결은 아니다”라고 말하셨어요. 결국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녹록치 않음을 겪을 텐데, 여기는 그에 대처하는 힘을 기르는 수행 장소이니까요. 그러니까 힘들면서도 즐거운 방법을 찾아가면 좋겠다고는 얘기해주셨어요. 덕분에 이 힘듦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올 한해 동안 연습해보고 싶어요.

이르 : 전 “동료가 첫번째다는 센세의 말이 인상 깊어요. 지금까지 삶에서 내게 정말 필요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을 때 ‘동료’란 생각이 들어요. 일 년 동안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래도 :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본질을 탐구해서 전환하는 사고 방식이 바로 발명가의 사고 방식이라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예를 들어 내가 전자파에 민감하다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거나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거죠. 덕분에 나의 약점도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양계장 만들기에 함께하는 ‘요루’


수행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어요?

요루 : 나조나조(수수께끼)는 매일매일 생겨요. 지금 저한테 가장 큰 나조나조는 서울살이에요. 서울에 다른 관계망이 없거든요. 환기가 될 수 있는 다른 관계망을 찾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래도 : 생활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점심 시간이에요. 먹는 힘으로 살아가는 게 큰데, 일하고 음식 준비하다 보면 점심이 많이 늦어지죠. (웃음) 점심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데 아직 쉽진 않네요.

이르 : 센세가 “동료들끼리는 다 보여줘라”하셨거든요. 어려운 거 같아요. 어디까지 다 보여줘야 하는지. 아직 용기가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표현하는 것도 쑥스럽고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1년 후 나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래도 : 잘 즐겼니?

이르 : 이제 뭐해 볼까?

요루 : 행복하니?

 

 

 

 

∴ 글         우민정
∴ 사진     박상준
∴ 디자인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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